‘공룡’ 플랫폼 기업, 유럽·미국선 ‘독점 제한’ 입법 나서

이창준·이윤정·권정혁 기자

화두로 떠오른 ‘플랫폼 독과점’ 해결책은

‘공룡’ 플랫폼 기업, 유럽·미국선 ‘독점 제한’ 입법 나서

각종 SNS 그만 쓰고 싶지만
업무상 이유로 떠나지 못해
카톡 207만명 탈퇴했지만
하루 만에 188만명 재가입

농수산물 온라인몰 ‘알찬농수산’을 운영하는 김원경씨(28)는 카카오 톡채널을 이용해 토요일 평균 대게 150박스를 판매해왔다. 하지만 카카오 먹통 사태가 벌어진 지난달 15일 신규 주문은커녕 이미 받은 주문의 물건도 보낼 수 없었다. 주문 내역과 고객 전화번호를 모두 카카오톡에 남겨놨기 때문이다. 김씨는 “서비스 먹통 3일 뒤인 17일에야 카카오 서비스가 차차 돌아왔고, 바로 손님들에게 일일이 연락했지만 일부 손님은 ‘사기’를 운운하기도 했다”며 “한 박스에 7만~8만원 하는 대게 150박스 전량을 환불 조치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번 사태 이후 카카오톡 판매창구를 닫을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워낙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를 통해 주문이 많다 보니 쉽게 다른 서비스를 선택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김씨처럼 온라인 플랫폼 서비스를 그만 쓰고 싶어도 업무상 이유로 떠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카카오 먹통 이후 207만명이 카카오톡을 탈퇴했지만, 188만명이 하루 만에 재가입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플랫폼을 떠나고 싶어도 갇힐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거대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디지털 공정경제’를 기치로 내건 공정거래위원회는 내부 지침과 기준을 손봐 특정 기업이 무분별하게 플랫폼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형성하거나 이를 남용하는 것을 막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단순 지침만으로는 실효성 있는 규제를 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사지침 만들어 플랫폼 독점 막는다는 공정위

기업결합 심사기준 강화부터
멀티호밍 제한 금지 등 담아
정부 연내 심사지침 만들기로
심사 허점에 실효성 의문

공정위 관계자는 “카카오 사태의 근본 원인은 카카오가 독과점 사업자로서 혁신 노력이나 서비스 안정성 유지에 소홀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사태의 표면적 원인은 카카오가 데이터 이원화를 부실하게 하는 등 기술적인 측면에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는 카카오가 서비스 관리를 안일하게 한 것이 근본 문제라는 지적이다.

카카오 먹통 사태 이후 공정위는 지난달 21일 경쟁 촉진 방안으로 우선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심사지침’을 연내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가 내놓은 심사지침(안)은 공정거래법에 있는 독과점 규제 내용을 플랫폼 경제에 맞게 재구성한 것이다. 거대 플랫폼 기업을 대상으로 ‘멀티호밍’(플랫폼 이용자의 경쟁 플랫폼 이용) 제한, 자사 우대, 끼워팔기 등을 금지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정부는 또 내년 초까지 플랫폼 기업 대상 ‘기업결합 심사기준’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플랫폼 기업이 인수·합병을 통해 무분별하게 덩치를 키워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쉽게 형성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현행 심사기준은 합병 대상 회사 중 한쪽의 자산 혹은 매출이 3000억원 이상, 다른 한쪽의 자산 혹은 매출이 300억원 이상일 때만 결합심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플랫폼 기업은 스타트업 수준의 소규모 기업을 인수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대부분 간이심사만 받거나 아예 심사에서 빠지게 된다. 카카오가 단기간에 몸집을 불린 것도 현행 심사의 허점을 보여준다.

■“지침만으론 실효성 담보 어려워”

일부 전문가들은 다소 회의적인 시각을 제기한다. 규제 내용을 법에 명시하지 않고 내부 지침으로만 정해놓으면 효과를 담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 법을 바탕으로 만든 지침으로는 새로운 플랫폼 시장의 독과점을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치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는 “규제하려면 먼저 기업의 독점 여부가 인정돼야 하는데, 법을 통해 정량적인 기준을 정해두지 않으면 지침을 바꿔도 이를 규정하기 어렵다”며 “설령 공정위가 독점이라고 규정해도 법원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제재 자체가 취소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럽과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플랫폼 독점을 제한하는 입법에 나섰다. 유럽연합(EU)은 내년 4월부터 플랫폼의 이용자 수를 중심으로 규제 기업을 정하고, 각종 의무를 지우는 ‘디지털 시장법’(DMA)을 발효할 계획이다. 미국 역시 지난해 6월 발의된 ‘플랫폼 반독점 패키지 5대 법안’이 하원 법사위원회를 통과하는 등 법적으로 제재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시민사회 역시 공정위 지침을 넘어 입법을 통한 규제에 힘을 보탰다. 지난달 26일 열린 문화연대 플랫폼 독점 토론회에서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시장과 더불어 (시민들의) 의식 세계에 걸쳐 독점 폐해가 크다면 플랫폼 독점 규제 법안을 통합적으로 마련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토종 플랫폼 성장 저해” vs “공룡 기업 ‘핀셋 규제’ 가능”

반면 정부는 법을 통한 독점 규제가 플랫폼 산업의 성장과 혁신을 막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일부 전문가 역시 국내 시장의 특성을 고려하면 굳이 법을 따로 만들지 않더라도 충분히 플랫폼 독과점 상황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은 구글 등 자국 플랫폼 기업 규모가 너무 커져서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까지 이어지는 등 특별한 규제 수요가 있지만 네이버와 카카오가 그 정도는 아니다”라며 “플랫폼 심사지침 등의 내용도 해외에서 논의하는 것들을 잘 참고해 국내 현실에 맞게 구성됐다”고 말했다.

거대 플랫폼만을 대상으로 한 ‘핀셋 입법’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김남근 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변호사)은 “GAFA(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를 겨냥한 미국처럼 국내에서도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민)’ 등 공룡 기업을 규제하는 독점방지법을 논의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가맹업과 관련해서도 가맹사업진흥법과 가맹사업공정화법이 있듯혁신은 혁신대로, 규제는 규제대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우선적으로 지침을 통해 독과점을 제재한다는 방침이지만 법적 규제의 가능성도 아예 배제하진 않았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지난달 21일 국정감사에서 “심사지침은 현행법을 구체화한 것이어서 구속력이 있다”면서도 “해외 입법례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법제화를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플랫폼 전담부서·인력 없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마련
정부 전담 부서·인력 배치로
독과점 효과적으로 규제해야

플랫폼 경제가 커지고 관련 공정 경쟁 이슈가 거듭 불거지고 있지만 공정위를 비롯한 정부에 이를 담당할 전담 인력은 한 명도 없다. 영국의 경우 경쟁시장청(CMA)에 플랫폼 규제 등을 전담하는 디지털시장부서가 새로 생겼고, 미국 역시 연방거래위원회(FTC) 내 전담 조직 신설이 논의되고 있다. 공정위 당국자는 “관련 직원들은 전부 행정 공무원들뿐”이라며 “전담 조직이 생기고 기술 전문가가 보강된다면 플랫폼 독과점을 더 효과적으로 규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 먹통 사태를 계기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국내에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징벌적 손배제는 재산상의 손해 원금과 이자에 더해 형벌적 요소로서 추가로 배상토록 하는 제도다.

이승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까지 국내법을 실효성 있게 적용하고 법을 집행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 오히려 국내 정보기술(IT) 기업 성장만 저해할 수 있다”며 “차라리 징벌적 손배제를 도입하면 플랫폼 기업들이 ‘카카오 먹통 사태’와 같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앞서 징벌적 손배제는 옥시를 비롯한 가습기살균제 사태 때도 논의가 있었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섬유화로 사망자만 1740명이 보고됐지만, 옥시가 낸 벌금은 1억5000만원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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